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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썰의전당 3회 리뷰 (22년 5월 22일 방송)

기지갱 2024. 1. 29. 00:24

10년전, 피렌체 여행중 찍은사진. 벌써 10년이라니

피렌체

이번화는 피렌체 라는 도시 전체가 주제가 된다.

르네상스를 꽃피운 꽃의도시 Florence.

프랑스 대문호 '스탕달'이 피렌체를 여행하다 문화예술에 너무 감탄한 나머지 호흡곤란과 의식혼란을 일으킬 정도였다고한다. 실제로 이런 현상을 스탕달증후군(피렌체 증후군이라고도함) 이라고 하는데 정식진단명은 아니다. 유명 가수의 콘서트에서 이 증후군을 일으키는 사람들을 볼수 있기도 하다

영화 '냉정과 열정사이'의 배경이기도 한데, OST가 너무 좋았던 기억이 나서 들으며 글을 써본다.

 

두오모 대성당

10년전 혼자 이탈리아를 여행했었다. 너무 오래되서 잊고있었는데 사진을 뒤적여 찾다보니 미켈란젤로 언덕에 힘들게 올라가서 저 두오모 사진을 찍고 너무 아름다워 한참 바라보고 있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저 아름다운 두오모 성당이 돔이 없는 상태로 100년동안 방치되어 있었다고한다. 원래는 작은 성당이 있던 자리였는데 주변 경쟁도시들이 대성당을 지으니 따라서 짓기는 했지만 지붕을 올릴 기술이 없던것이다. 결국 피렌체 정부에서(당시엔 도시국가였으니까) 공모전을 열어 지붕을 올릴 사람을 찾았다. 금화200냥정도가 걸려있었고 굳이 지금의 시세로 따지면 2억원 정도인데 금액때문에 많은 사람이 응모했을것 같지만 기술의 문제로 많지는 않았다고한다. 이 지붕은 '필리프 브루넬레스키' 라는 건축가가 디자인한 돔으로 완성되어 지금의 두오모 성당이 되었다. 브루넬레스키는 원래 금 세공업자라고 한다. 정말 르네상스시대는 천재들의 집합소같다.

이 건축가는 돔의 비밀을 끝까지 알려주지 않아서 지금도 추측만 할 뿐이라고한다. 어떻게 올렸는지 알수 없다니 괜히 내가 다 아쉬운 기분이다. 돔에만 2만5천톤의 벽돌이 들어갔고, 헤링본 모양으로 엇갈리게 쌓았다.

16년간 건축해서 1436년 3월25일 완성되었고 이를 축하하는 축성식도 열었다.

두오모 성당의 벽돌 모습 from 예썰의전당 3회

메디치가문

중세 유럽에서는 '길드' 라는 상공인들의 모임이 있었다. 무역, 은행업, 모직생산 등으로 부를 축적한 사람들이고, 도시 통치자를 선정할 정도로 강력한 힘을 소유한 무리였다. 1400년대 흑사병이후 인구가 줄고 노동력이 귀해지며 임금과 소비가 증가했고 여기에 피렌체 길드들의 예술과 과학에대한 투자로 재능있는 인재들이 피렌체로 몰려들었다.

이런 길드의 대표적 가문이 바로 메디치가문이다. 상인출신의 가문인데, '조반니 디 비치 데메디치'가 은행업으로 가문을 일으킨다. 은행업은 망했지만 강력한 자본으로 문화,예술을 주도해 권력을 독식했다. 피렌체의 내.외부 문제를 주도적으로 해결하기위해 나서며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던 가문이다. 

상인출신의 가문답게 장부도 굉장히 잘 정리해서 남겨두었는데, 메디치가 예술에 얼마나 후원했는지 상세하게 기록되어있다.  40년 가까이 총 6600억 정도를 투자한것으로 나온다고하니, 역시 피렌체의 예술은 메디치가문의 지갑에서 나왔다는 말이 괜히 나온게 아닌듯하다. 후원을 받은 예술가와 학자로는 그 유명한,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빈치, 갈릴레이 갈릴레오, 산드로보티첼리 등이 있다. 이중 미켈란젤로는 피렌체를 대표하는 조각가가 없다고 생각한 메디치가에서 15살때부터 후원하며 키운 예술가라고한다. 돈만 많았던게 아니라 예술에 대한 안목이 매우 뛰어난 사람들같다. 미켈란젤로의 대표작 다비드상은 단 한조각의 거대한 대리석으로 만들어졌고 높이가 무려 5.17m 다. 두오모 꼭대기에 올릴 목적으로 제작된거라 정면보다는 아래에서 봐야 비율이 맞아보인다고 한다.

미켈란젤로는 얼마나 천재인걸까..... (사진 from 예썰의전당 3회)

후원의 탈을 쓴 간섭도 많았던것같다  다빈치의 메모에서 "나를 만든것도 메디치 가문이고, 나를 파멸시킨 것도 메디치 가문이다" 라는 말이 있다고한다. 상인출신의 가문이라 가문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후원하는것도 없진 않았을거라는 말에 동의한다. 왜 이렇게 예술에 많은 투자를 하냐는 주변의 질문에는 "언젠가 가문이 망해도 후원한 예술은 남을거고, 우리 가문을 기억하게 해줄거니까" 라고 했다고 한다. 실제로 300년간 번영한 이 가문은 주변국이 커지고, 대가 끊기며 본인들의 시대를 마무리했다. 마지막 직계후손인 '안나 마리아 루이자 데 메디치 (Anna Maria Luisa de'Medici)' 가 가문의 모든 컬렉션을 피렌체 정부에 기증했다. 조건은 공익을 위해서만 사용할것, 피렌체 밖으로 반출하지 말것 이 두가지였다고한다. 

그리하여 메디치가 집무실로 사용하던 우피치건물에 2500여점의 작품을 전시하여 우피치 미술관이 되었다. 

메디치가 예술에 그토록 열심히 후원했던 목적은 이루어진 것 같다.

 

마치며

메디치 가문이 르네상스 미술을 키워가는 과정을 보면, 위대한 작가를 알아보는 눈이 있는가에 더해 사회가 그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는가도 중요한것 같다. 우리나라에도 '한국 메세나협회' 라는 예술을 후원하는 단체가 있고 연 예산 2천억원, 240여개기업체가 참여중이라고한다. 그리고 2021문화체육관광부의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미술작가의 평균 연봉은 755만원이다. 월급이 아닌 연봉이라니....

예썰의전당 3회

또, 제국주의의 산물이라고 볼수 있는 루브르,대영박물관에 대비되게 개인의 컬렉션으로 이루어진 우피치 미술관이 나오는 부분에서는

일본의 한 대학에서 공개도 하지 않고 소장하고 있는 안견의 몽유도원도 (1447年) 이야기를 들었다. 

파리에는 기메아시아박물관 이라는 동양미술 전문 박물관이 있는데, 그곳에 신윤복의 풍속화, 조선백자, 반가사유상 등이 있다. 현재 해외에 반출되어 돌아오지 못한 우리 문화재가 20만 4,693점 이라고 한다 (2021 문화재청발표) 나라가 힘이 없어 빼앗긴것들을 생각하니 안타깝다.